[미즈] 절약도 경제다

절약도 경제다
글쓴이 김동희 등록일 2010-11-22 22:10 조회수 5,185 글자확대 글자축소

절약도 경제다! 빈부격차 없는 독일 벼룩시장, 생활용품은 물론 진품을 만날 수도

독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읽기 위한 가장 좋은 곳이 바로 벼룩시장이다. 근래 들어 트뢰델 마크트(Troedel Markt/ 트뢰델 마크트, 즉 만물, 고물시장)라고도 불리는 벼룩시장은 독일 소비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곳. 여기서 만큼은 빈부의 격차를 찾아볼 수 없다.

▲ 빌머스도르프의 벼룩시장

▲ 초등학교에서 열린 벼룩시장

▲ 벼룩시장의 모습

멋지게 차려입은 노부인이 단돈 2유로에 판매되는 앙증맞은 액세서리를 구입하거나, 조무래기 아이들도 장난감과 동화책을 흥정하곤 한다. 오래된 것의 멋스러움과 부담스럽지 않는 가격들이 빈부의 구미를 고르게 평정하는 곳이기도 하다.

게다가 최근에는 벼룩시장이 관광 상품화 되면서 세계 각국에서 오는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줄을 잇고 있다. 합리적이고 냉정한 독일사회를 보다가도 이곳에서 흥정하다보면 어느새 사람 사는 정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아이들이 보이면 작은 소품을 선물로 건네는 판매자의 미덕이 벼룩시장을 탄탄히 이끌어온 정신적 지주가 아닌가 싶다.

원래 독일의 벼룩시장은 중세 말 영주들이 자신의 입던 옷을 남에게 주는 것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을 갖춘 벼룩시장은 베를린의 경우 1973년부터 형성되었다.

▲ 매주 열리는 슈판다우 지역의 벼룩시장

매주 열리는 벼룩시장은 현재 베를린 내 170여 개에 달한다. 이중 베를리너들은 매주 토, 일요일 마다 Tiergarten(티어가르텐) 지역과 박물관 섬 근처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을 꼽는다. 이들 지역의 경우 동유럽에서 몰려 온 전문 판매자들이 많으며, 여행책자에 자주 올라간 탓에 관광객들의 방문이 잦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볼거리는 많지만 가격대가 만만치 않다. 이에 비해 각 지역별로 열리는 벼룩시장은 가정에서 직접 쓰다 만 물건들을 판매해 가격흥정의 재미도 쏠쏠하고, 잘만 고르면 진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테마별 벼룩시장 유형

▲ 티어가르텐 지역의 동유럽에서 온 판매자의 모습

최근에는 벼룩시장이 테마별로 다양해지는 추세다. 안틱 벼룩시장(Antikmarkt)에서는 고풍스런 안틱가구와 액세서리 및 소품들이 주로 판매되곤 한다. 오스트반호프(Ostbahnhof) 지역에서 열리는 안틱시장은 150~200여 명의 전문적인 예술인들도 참가하곤 한다. 보통 자릿세는 23유로에서 35유로 정도를 지불한다. 이외에도 야간벼룩시장(Nachtmarkt)은 보통 오후 4시부터 밤 자정까지 열린다. 우리나라처럼 밤 12시까지 열리는 매장이 많지 않은(독일에서 일반 할인매장은 보통 8시에 문을 닫지만 점차 시간이 연장되는 추세. 어떤 지역의 'Edeka' 매장의 경우 현재 밤 12시까지 문을 연다.) 독일에서는 이색적이고 흥미로운 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장은 가끔씩 열리는데 그 날짜 등을 명시한 대자보가 거리 곳곳에 붙어있기도 한다.

또한 소치알 마크트(Sozialmarkt/ 사회적 벼룩시장)는 매달 900유로(한화로 약 170만 원 정도) 이하의 연금생활자나 실업자들을 위한 벼룩시장이다.

▲ 어린이가 직접 판매하는 어린이 벼룩시장

보통 단체나 연합회 등에서 열리곤 하는데 아이들 장난감에서부터 생활용품 등이 저렴하게 거래되고 있다.
이외에도 유치원, 초등학교, 각 연합회 및 종교단체 등에서 열리는 어린이 벼룩시장도 볼만하다. 특히 신학기가 되기 전 지역별로 열리는 ‘베이비바자회’에서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용품들이 선보인다. 독일 아이들에게 필수적인 자전거 헬멧을 비롯해 각종 동화책, 책가방 등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참고로 독일 아이들의 초등학교 가방은 큼직한데다 가격도 100유로 선을 넘어가고 있어 신품을 살 경우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벼룩시장의 운영과 거래행태

독일인들은 아무리 부유하게 산다 해도 자신이 쓰던 물건들을 쉽게 버리지 않는다. 그 이유로는 검소한 면도 있지만 이사를 자주 가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독일에서는 ‘세 번 이사하면 집에 불 한 번 난 꼴이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이사비용 및 정신적 대가를 크게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매달 임대료를 내고 사는 탓에, 이사를 가려면 이사 오기 전 집의 상태로 완전 복구해놓아야 한다.(심지어 벽에 못박은 자리까지 메워놓아야 함) 그렇지 않으면 이사올 때 관리회사나 주인에게 지불했던 2~3달치 보증금을 받지 못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사를 주저하게 되고, 결국 버리는 물건도 적은 게 당연.

그리고 독일에서는 지하실 사용이 편리하다. 대부분 아파트에 살아도 가정 마다 큼직한 지하실을 가지고 있어 자신이 쓰던 물건은 죄다 지하실에 보관이 가능하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가 쓰던 장난감을 손자가 쓰는 경우가 어색한 모습이 아니다. 이 가운데 벼룩시장에 내놓게 되는 그릇에 금이 갔거나 흠집이 났어도 당당하게 판매한다. 물론 구매자가 흥정을 하면 대체로 받아주는 편.

벼룩시장에 매대를 마련하려면 보통 주최측에게 자릿세를 내야 한다. 아랍인들과 터어키인들이 밀집한 노이쾰른 지역의 Lipschitzplatz(립쉬츠플라츠)에서 매주 열리는 시장은 매대 1미터당 4유로의 자릿세를 내야 한다. 각 지역마다 자릿세는 다르다. 템펠호프 지역의 경우 토요일은 35유로지만, 일요일은 39유로를 내야 하는 등 날짜별로 차별이 있는 경우도 있다. 세금 많은 독일에서 벼룩시장은 직거래이기 때문에 따로 세금을 내지 않으므로 자릿세의 명목으로 지불을 요구하는 것이다.

인터넷 사용인구가 늘어나면서 독일에서도 이베이 등 인터넷 벼룩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직접 눈으로 보고 구입하는 체감적 소비자들과 구경하며 즐기는 엔조이형 소비자들은 여전히 오프라인 벼룩시장을 찾는다. 게다가 전문적 판매자 외에 일반 가정에서 나온 벼룩시장 공간이 많은 것도 일반 시민들의 오프라인 벼룩시장을 선호하는 이유가 된다.

조금 넉넉한 이들은 자신의 취향대로, 부족한 이들은 각각 자신의 요구대로 맞춤형 소비가 이루어지는 곳. 버리는 물건 없이 내수경제가 돌아갈까 의심이 들지만, 절약도 하나의 경제라고 생각한다면 가장 경제적인 소비통로의 대명사일 것이다.

나만의 노하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