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이야기다.
중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 새내기 교사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러 문화 활동에 반쯤 미쳐 있을 때였다.
학급 신문 만들기, 연극하기, 이곳저곳 탐방하기 등등..
학급 신문 편집을 맡은 아이들 몇명과 함께 교육 관련 연극을 관람하고
연극 배우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중 젊은 배우 한 명과 우리 반 아이들이 진지한 대화 시간을 가졌다.
매우 겸손한 자세로 인터뷰에 응했던 그 배우의 이름도,
구체적인 대화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문답이 있다.
'공연 중 대사를 잊어버리는 일도 있나요?'라는 아이들의 질문에
'대사가 입에 붙을 정도로 연습하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다'라는
담백한(?) 답변이었다.
그날의 만남은 아이들이 만든 소박한 학급신문 속 기사와 사진으로 남았고
내 머리 속에서 이 일은 희미해졌다.
그러고 나서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방에서 딩굴딩굴 영화 잡지를 읽고 있는데
한참 뜨고 있는 송강호라는 배우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기사를 읽는 중 그 배우의 진지한 인터뷰 내용이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다.
머리를 굴리며 생각해보다가.. 가만, 이거 혹시 그때 그 연극배우 아닌감?
부랴부랴 몇년 전의 학급 신문을 찾아보니 오호라, 그 이름 송강호가 맞았다.
한 분야에서 뜬다는 것은, 아니 성공한다는 것은
수 년의 세월을 관통하는 그만의 확고한 철학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다.
별로 좋지 못한 내 머리의 깊은 어딘가에 그의 말과 철학이
입력돼 있다는 게 재미있었다.
또 한참 세월이 흐른 근간의 어느 언론에서 송강호가 말한 내용으로 기억하는데
'내 앞의 한 사람을 설득하는 힘과 천만명의 사람을 설득하는 힘은 동일하다'
이런 말이었던 것 같다(내 기억이 맞는지 살짝 자신없음^^).
어쨌든
그 말에 난 동의한다.
이 정도의 진중함을 가진 사람이라면 앞으로도 쭈욱...기대해 볼 만하지 않을까?
익명2
진중함...요즘 참 갖기 힘든 요소..
그런 사람도 찾기 어렵구요..
언제 한 번이라도 마주친 적이 있던 사람이 유명인이 되었을때...
감회가 새로우실듯..^^
답글
사라
팔색조 같은 최민식에 비해서 정형화된 연기 패턴을 보여준 송강호에 대해 한동안은 좀 싫증이 났었죠.
작년에 <놈,놈,놈>에서 그의 익살스런 모습을 보며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엽다고 느낀 뒤로
그 사람의 이미지를 편하게 소비하기 시작했는데,
이번에 진지한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박쥐가 기대되요.
개봉관에서 내리기 전에 보러 가야 할텐뎅...^^
답글